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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할 신화’ 백인천 전 감독 별세…한국 야구사의 한 페이지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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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으로 오랜 기간 투병해 온 백 전 감독은 최근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14일 오전 6시 30분께 충남 천안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백 전 감독은 8·15 해방 이후 부친의 고향인 평안북도 철산에서 생활하다 6·25전쟁 이전 월남했다. 서울 효제초등학교를 거쳐 성동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경동중으로 전학한 뒤 경동고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61년 농협에 입단한 그는 같은 해 국가대표 포수로 선발돼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았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62년 다이요 훼일즈에 입단하며 일본 프로야구 생활을 시작했다.
1974년 니혼햄 파이터스, 1975년 다이헤이요 라이온스로 팀을 옮긴 백 전 감독은 1975년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당시 타율은 3할1푼9리2모였다. 이후 롯데 오리온스와 긴테쓰 버팔로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간 뒤 1981년 일본 무대를 마무리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19년, 한국 프로야구에서 3년을 뛴 백 전 감독의 프로 선수 경력은 총 22년에 달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에서도 두 시즌을 보낸 그는 한국 야구가 걸음마를 떼던 시기에 강렬한 발자취를 남겼다.
지도자로서도 굵직한 성과를 냈다. 1990년 LG 트윈스 창단 감독으로 다시 현장에 복귀한 그는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후 1996년 삼성 라이온즈, 2002년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을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1997년 삼성 감독 재임 당시 처음 뇌경색 증상을 겪으며 지휘봉을 내려놓기도 했다. 이후 사기를 당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었고, 네 차례 뇌경색과 한 차례 뇌출혈을 견디며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백 전 감독은 평소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승부사 정신을 좋아했다. 현역 시절에는 ‘투혼의 야구’를 강조하며 한국 프로야구에 강한 정신력과 투쟁심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과 마지막까지 교류했던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은 백 전 감독을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운 진정한 승부사”라며 애도했다.
백 전 감독의 별세로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 초대 감독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은 박영길(85)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한 명만 남게 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백 전 감독의 장례를 KBO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에 마련됐다. 발인 일정은 미국에 거주 중인 동생이 귀국한 뒤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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